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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고양- 고양의 러브스토리 (3)

일타홍과 심희수의 사랑이야기

황금희 (고양소식 편집위원)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산88번지에 있는 심희수의 묘 옆에 있는 일타홍 제단. 심흐수 묘는 고양시 향도문화제 제37호로 지정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무관심하게 지나치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지만, 찬찬히 짚어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살아있다. 마을마다, 거리마다, 살아 숨 쉬는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지면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낮은 능선에 심희수(沈喜壽 15481622)의 묘가 부인인 광주 노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봉본 왼쪽에 일타홍금산이씨지단(一朶紅錦山李氏之壇)’이라고 쓰인 제단이 있다는 점이다.

 

한 떨기 꽃일타홍(一朶紅)은 조선시대 명종과 선조 때의 금산출신의 기생이었다. 이름은 취연(翠蓮). 당대에 뛰어난 용모와 노래 솜씨 그리고 춤으로 이름을 날렸던 일타홍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벼슬길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뛰어난 낭군을 만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는 큰 인물로 만들어 자신이 직접 이룰 수 없는 꿈을 대신 이루게 하는 것이었다.

 

심희수는 혁혁한 양반가문의 후손이자 훗날 그 역시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호탕함을 일삼아 놀기를 즐기며 15세에 광동(狂童)라고 불릴 정도로 손가락질을 받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심희수가 15세 때, 두 살 연상인 일타홍은 17세 때 어느 재상 집 잔칫집에서 이루어졌다. 그날도 심희수는 먹고 마시며 기생들을 희롱하고 다녔다. 그런데 일타홍은 광동 심희수의 얼굴에서 번상치 않은 기운을 읽는다. 일타홍은 심희수에게 가만히 다가가 속삭인다. “술자리가 끝나면 집으로 찾아갈 터이니 기다리세요.”

 

천하제일의 재색을 겸비한 기생 일타홍이 그리 속삭이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희수. 그날 저녁 일타홍은 약속한대로 심희수를 찾아가 그의 어머니에게 말한다. “마님, 저는 금산 출신의 기생 일타홍입니다. 귀댁의 도련님에게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장차 귀하게 될 상입니다. 마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오늘부터 이 댁에 들어와 도련님을 올바론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아들의 망나니짓을 잡아주겠다 하니 심희수의 어머니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지내게 된다. “소첩은 살다가 도망가는 일은 없을 것이니, 이 책을 1권씩 떼면 잠자리를 허락하겠습니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워낙 머리가 비상했던 심희수는 22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뒤인 1572년에는 별시 문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심희수가 성장할수록 일타홍의 절망은 커졌다. 그녀는 정실부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희수는 양반집 규수 盧克愼(노극신)의 딸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후 일타홍의 삶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평생 심희수의 곁에 살다가 평안하게 죽었다는 설도 있고, 정실부인이 되지 못한 것을 비관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도 있다.

 

일타홍은 죽기 전에 심희수에게 유언을 남긴다. 자신을 심희수의 선영 아래 묻어달라고 한 것이다. 죽어서라도 심희수의 정식 아내로 대접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소원을 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일타홍의 시신을 직접 염하여 고양의 선영 안에 장사 지냈다.

 

조선시대 기녀 일타홍과 심희수의 사랑이야기는 불운한 신분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던 조선시대 한 여성에 관한 인생보고서이자, 이 여자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했던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애정 보고서다.

 

 

참고자료

 

<스토리텔링북 고양 이야기 여행>(이상국, 2011)

<선비평전>(이성무, 2011),

<여인, 시대를 품다>(이은식, 2010),

<치마속 조선사> (손을주, 2009),

<고전문학으로 한국인의 사랑 읽기>(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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