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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양/ 스토리텔링 고양

고양의 허스토리(Herstory)
인원왕후의 이야기가 있는 300년 고택
영사정

최근 고양시는 여성친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고양의 허스토리(Herstory) 발굴을 위한 여성문화유적 교육’을 실시했다. 여성 역사문화 교육은 3가지 테마로 나누어 전문가와 함께 여성역사가 있는 이야기길을 탐방하는 것이다. 고양시 여성가족과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남성 중심 역사 속에서 배재되어 왔던 고양 여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그 행사의 첫 번째 탐방지로 선정된 곳은 바로 영사정(永思亭)이다.

글/사진 황금희_마이스토리 돌 대표  

부모와의 사연 한글 책으로 남긴 인원왕후 
영사정은 조선 19대 왕 숙종의 4번째 부인인 인원왕후의 아버지 김주신(金柱臣)이 지은 집이다. 김주신은 그의 아버지 김일진(金一振)을 선영봉사하기 위해 1709년에 제사(祭舍)로 집을 짓고 ‘영원히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영사정(永思亭)이라 이름 붙였다. 올해로 무려 30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다.
인원왕후는 자신의 소생은 없었으나 영조의 후견인으로서 조선 후기 정치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인원왕후는 평소에 국문으로 글쓰기를 즐겨하였다고 하는데 한글문집을 세 권이나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가 직접 지은 것으로 확인된《션균유사》,《션비유사》,《뉵아육장》는 친정부모와 관계를 기록한 한글문집이다.《션균유사》는 왕후가 돌아가신 아버지 김주신의 겸손하고 충직한 언행을 기록한 것이고,《션비유사》는 왕후가 돌아가신 어머니 조 씨의 근신하는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이들 자료는 모두 왕후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고 있다. 《뉵아육장》은 《시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부모의 생육한 은혜에 감사하는 자식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친정 부모님의 생전의 훌륭한 모습을 추모하고 이를 친정 자손들에게 전해 주어 모범으로 삼게 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것이다. 이 책에서 아버지 김주신에 대한 에피소드 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군이 궐 안에 들어오셔서 내가 다과를 베풀면 선군께서는 사양하시며 이렇게 귀한 음식을 어찌 천한 입에 먹겠습니까? 말씀하셨고 여러 차례 그만두라 이르시고 깊이 불안해하시니... ”
(출처 : 정하영,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2006, 『숙종 계비 인원왕후의 한글기록 : 《션균유사》, 《션비유사》』)
인원왕후 앞에 엎드린 아버지는 친딸이 내린 다과를 받고도 뒷걸음질 쳤다. 사위인 숙종 임금이 내린 음식에 대해서는 더 어려워해 인원왕후는 ‘마시며 씹으시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18세기 숙종비 인원왕후의 무덤은 서오릉의 하나인 명릉(明陵)이며 숙종, 인현왕후와 묻혀있다.

 

조선 후기 살림집 구조 가진 가옥
다시 영사정 얘기를 해보자. 영사정은 ‘ㄷ’자형의 안채와 ‘ㅣ’자형 행랑채가 합쳐져 ‘ㅁ’자 형으로 배치된 건축양식으로 풍광 또한 아름다운 곳이다.  대청의 뒷문은 2짝 판문인데 가운데 문설주(기둥)가 설치된 특이한 구조다.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보기 드문 구조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설치한 문틀과 아방의 짜 맞춤이 마치 가구를 짜 맞춘 듯 정밀하게 연귀맞춤으로 되어 있었다. 최근 10여 년 전까지 문중 후손들이 이 집에서 생활했기에 그 기둥이 거추장스러워 기둥을 없애고 개조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선대의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집이기에 후손들은 이 집을 소중하게 아끼며 대물림해왔다. 영사정 복원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마터면 헐릴 뻔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고군분투 끝에 2010년 3월 23일 경기도 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조선후기 살림집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적 가옥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2014년 지상 1층, 연면적 127.4㎡ 규모의 영사정 안채 및 행랑채 복원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역사체험공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영사정은 관람객들이 원하면 언제든 방문할 수 있다. 문화재 해설가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곧 등장할 예정이다. 인원왕후의 친정이자, 조선후기 살림집 구조의 대표적인 가옥이라는 점에서 고양 여성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영사정의 스토리텔링이 더욱 풍성해지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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