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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가좌도서관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아주 특별한 페미니즘 강의: 여성성을 넘어 인간의 삶을 꿈꾸다의 세 번째 순서를 진행했습니다.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이신 김홍미리 선생님의 "일상속의 페미니즘-성평등을 상상하기" 강의를 보여드립니다^^


 선생님은 '페미니즘은 질문' 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성평등에 대해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찬성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차별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평등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평등을 정치의 장으로 초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평등은 같은 것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이룩하는 것이라는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차별이 장벽으로 표시된 이 그림을 놓고 누구의 장벽이 더 높은가? 벽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가 정하나?등의 질문에서 나온 다른 그림들도 보았습니다. 또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그림을 통해 나는 차별을 알아챌 수 있는가? 인권침해는 누구에게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19세기의 이상적인 노예훈련법을 예시로,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는 인권 침해가 일어난다고 느끼지도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놓고 비장애인들이 '왜 장애인들이 밖에 나와서 소란스럽게 하냐'고 반대한 사례가 있었죠. 이 또한 장애인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초대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의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례였습니다.


 평등에 찬성한다는 사람들도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차별을 못 느끼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가늠하고 평가하게 됩니다. 흑인 참정권 운동과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날 때, 쟁의의 장 밖에서 누구의 인권이 더 소중한지 저울질하는 사람들은 누구로부터도 인권을 의심받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역사에서 보듯 인권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낸 것이고, 시민의 경계를 넓혀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멈춰서 질문해야 합니다. 근대 이전 전통사회에서는 신의 뜻에 따라 인간의 위치가 정해졌다면, 사회계약을 통해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했다는 근대에는 누가 계약의 주체인가가 중요해졌습니다. 이때 장애인, 어린이,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여자도 제대로 된 계약 주체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남편에게 동조해서 계약에 편승한 것으로 여겨졌고 남성의 공적 세계와 대비되는 사적 세계에 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원젠더, 이성애 중심 시스템이 이때 성립되었기에 우리가 제대로 성평등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미 남성을 성적 주체로 합의한 사회이기 때문에 호모포비아와 미소지니가 가능해집니다. 남성이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항상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취급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이후 강의 내용과 평소 궁금했던 문제등에 대해 질의 응답을 한 후 마무리했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아 열심히 들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지막 강의인 김고연주 선생님의 "나의 첫 젠더 수업"만 남았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최종수정일: 2018년 7월 11일 14:00

작성자: 가좌도서관 사서 8급 곽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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