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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orsim과 떠나는 문화유산답사(고양시 편) - 원래부터 맞배지붕이었을까? 흥국사 나한전(1710)  고양시문화유산답사기 / 고양시의 문화유산 

2012/05/29 08:3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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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맞배지붕이었을까? 흥국사 나한전(1710)

지정 번호 : 향토문화재 제34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203

한미산 흥국사 나한전은 약사전 서쪽에 있는 건물로 1999년 2월 1일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내부에는 길이 389cm, 너비 38cm 높이 37cm의 괘불함이 상부에 매달려 있고 그 안에 아미타삼존불화가 모셔져 있지요. 1996년까지 칠성각으로 사용되다가 삼성각이 새롭게 건립되면서 옮겨 모시게 되었는데, 칠성각을 건립한 뇌응당이 광무 임인년(1902)에 나한전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음을 참고하여 나한전으로 개칭한 것입니다.

나한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주불전인 약사전에 비해 규모가 약간 작습니다. 기단은 약사전과 기단을 직교되게 꺾어 연장하여 같은 높이로 하여 대지 경사를 처리하였고 4단의 장대석을 바른층 쌓기하여 기단을 만들었으며 기단 앞에 장대석으로 된 4단의 계단을 놓았습니다. 주초는 약사전과 같이 정평주초 형식으로 잘 다듬어진 방형초석을 사용하였는데 그 중 우측면 중간 평기 기둥 하부 초석만 거칠게 다듬어진 원주입니다. 기둥은 흘림이 거의 없는 원주를 사용하였으며 공포는 주두 아래에서 시작하여 외부에 앙서형 초가지를 내민 익공을 두겹으로 구성하고 내부는 파련형으로 일체화된 이익공 삼포식으로 건물의 전후면은 같은 모양의 공포로 구성하였습니다. 두공첨차와 출목첨차는 모두 화각첨차를 사용하여 살미의 형태와도 조화되도록 하였습니다. 외부로 노출된 보머리에는 봉두(鳳頭)를 꽂아 장식하였는데 봉두는 고종년간 건립된 사찰 전각 입면에 주요한 의장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전술한 흥국사 약사전에서는 주간포에 봉두조각이 결구되어 있는데 이와 같이 19세기 불교건축에서 주불전은 팔작지붕에 다포형식으로 결구되어 간포에는 봉두조각이 결구되지만 보뺄목에는 봉두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부불전에 해당하는 건물은 대체로 맞배지붕에 익공형식으로 결구되면서 본 나한전과 같이 보뺄목에 봉두조각이 끼워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포에서 창방 뺄목은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내밀었으나 그 하부에 초엽낙양을 길게 달았습니다. 주간에는 화반은 별도로 구성하지 않고 긴 장판재를 사용하여 초각하였는데 이는 고종년간 서울・경기 일원에 건립된 사찰 내 전각에서 널리 사용된 판벽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는 하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주간 출목도리 하부에는 궁궐이나 관아건축에서 많이 쓰이는 운공(雲工)을 두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공포는 단정한 구조미 보다는 화려한 의장을 중시한 형식입니다. 창호는 정면 3칸 전체에만 설치하였는데 모두 궁판을 단 세살문으로 4분합 들어열개로 하였습니다. 그 외의 벽체는 판장벽으로 하였는데 고종년간 서울・경기 일원에 건립된 사찰에서 널리 활용된 특징입니다.

가구는 무고주 5량으로 하였는데 맞배지붕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측면 평주에서 대들보 위로 충량을 걸고 충량 단부는 용머리로 장엄하였습니다. 대들보 상단에는 단면이 상당히 큰 뜬창방을 올려놓은 것이 특징적이고 그 위로 직교되게 종보를 설치하고 중도리를 놓았으며 충량 위에서는 외기를 돌렸습니다. 충량과 외기를 설치한 가구 방식은 내부에서만 판단한다면 팔작지붕을 구성하기 위한 것인데 건물 양측면의 천정 속 가구에서는 팔작지붕을 개수한 것으로 판단할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전통건축 전문가이신 선문대학교 여상진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화계사 명부전, 봉은사 판전, 흥천사 명부전 등 19세기 서울・경기지역의 맞배지붕 불전에서는 충량이 종종 나타나며 이에 대해서는 팔작지붕을 보수하여 맞배지붕으로 바뀐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충량은 본래부터 설치된 것으로 구조재가 아닌 장엄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된 흥국사 나한전의 가구방식의 특징은 건물 내부의 천장을 해체하고 부재 상태를 보다 면밀하게 검토하여야 보다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측면의 중앙 평주에는 충량이 걸리므로 측면 가구는 대들보 위로 양측 1/3위치에 화반을 설치하여 종보를 받쳤습니다. 종보 부분에 설치된 우물마루는 이곳 측면의 종보까지 연장되어 설치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전후면에는 빗천장을 대었습니다. 내부는 전체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처마는 겹처마에 지붕은 전술한 바와 같이 맞배지붕으로 양측면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용마루 양측에는 용두를 두어 장식하였는데 이렇게 용두(龍頭), 취두(鷲頭) 등의 장식부재를 사용하는 것은 고종조 이래 일제강점기까지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단청은 금단청을 하였습니다.

나한전은 조선후기의 장식적 성향과 여러 건축 형식이 혼재되는 19세기 후반 불전의 건축 특징을 서울・경기 지역의 지역적 특징과 함께 보여주는 의미있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흥국사의 건축물에 대한 내용은 고양시에서 출간된 「도지정문화재실측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사진을 좀 더 찍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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