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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서 발견한 일산 신도시의 초기 풍경들을 소개합니다. 

 

은희경은 “일산에서 소설을 쓰면서 비로소 내 인생이 시작됐다”고 했다. 신도시와 새 삶이 맞아떨어졌다. 작가 은희경에게 일산은 카프카의 프라하, 폴 오스터의 뉴욕,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다.    - 『내 인생의 도시』 (오태진 저) 중에서 

 

서숙,(2015).집우 집주.수필대,10,326-328.

나에게 가장 경이로운 경험 중의 하나는 90년대 초반에 일산 신도시가 세워지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열 번째 도전으로 간신히 당첨된 아파트였다. 무조건 신청부터 하였던 터라 도대체 일산이라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맨 처음에 갔을 때는 그저 논밭이 펼쳐진 드넓은 평원이었다. 몇 달 있다 가보니 온통 파헤쳐진 벌판에 벌건 흙더미가 붉은 사막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시 몇 달 후에는 시멘트 구조물 위로 철근이 삐죽삐죽 올라갔다. 불과 2-3년 만에 거대한 아파트군락이 세워진 것이다. 24만 인구를 품을 6만 세대의 도시 하나가 그야말로 뚝딱하는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인공의 엄청난 능력을 실감하였다. 조그마한 아파트를 처분하고 힘들게 마련한 넓은 새 집은 나로서는 처음 가져보는 제대로 된 집이었다. 세련된 타일이 깔린 현관, 오닉스의 세면기, 하이그로시의 부엌 가구들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다. 마침 쓰던 살림살이도 대체로 낡았으므로 가구도 몽땅 새것으로 바꿨다.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이만큼 가까이 / 정세랑

작가가 실제로 어린 시절 았던, 충격적이고 낯설게 변화하던 신도시 풍경

 

지금은 일산에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대규모로 들어선 데다 시설도 영화 마니아들을 불러들일 만큼 좋아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해까지 우리가 다니던 영화관은 한 군데였다. 후에 3관으로 늘긴 했지만 당시까지 단관이었던 일산 최초의 영화관 나운시네마였다. 멀티플렉스란 말을 몰랐을 때다. 영화를 고르는 게 아니라 그저 다니는 극장이 있었던 때였다. 
1999년 9월에 일산 롯데백화점에 전국 최초로 롯데시네마가 생겨 학교 애들은 좋아라 그쪽으로 몰렸다.

 

 

 

 

소년을 위로해줘 / 은희경

이 소설은 은희경 소설가가 "아들과 딸에게 바치는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가 끝없이 이어졌다. 군데군데 공원이 보이고 자전거 도로와 육교들, 그리고 학교도 많았다. 상가가 길게 이어지다 끝나는 곳마다 나타나는 또 다른 아파트 단지들. 마치 하나의 풍경을 블록으로 잡아서 복사한 뒤 ctrl+V 키로 계속 붙이기를 해놓은 것 같았다. 인간들이 너무 많이 사는 곳에 와 버렸군.

 

 

자전거 여행 2 / 김훈 

호수공원의 산신령 김훈 작가(신간 『연필로 쓰기』 참조), 여행 산문집의 백미로 꼽히는 이 책에서 일산 신도시를 바라보는 김훈 작가만의 정확하고 깊은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일산 신도시의 밤
이 땅은 구석기 이래 10만 년 동안 한강이 범람하는 갈대밭이었다. 
한강 둑이 완공된 뒤에는 경작지로 변했고, 
1990년부터 경작지를 갈아엎고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었다.
수평의 삶은 수직의 삶으로 바뀌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이기호

- 그러게나 말입니다 -

나이 지긋한 대리기사가 손님에게 예전에 자신이 만났던 낯선 고객 이야기를 들려준다. 트럭을 대리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대곡역이었고, 손님이 잠들어버려서 그의 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 사방이 깜깜하고 온통 논밭인 곳, 어디쯤에 그의 집이 있었을까?
대화행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일산으로 향하다 보면 원당, 화정역을 지나 한적한 농촌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초행길이라면 여기가 어디인지, 일산으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의아한 곳이 바로 대곡역이다. 지금은 GTX 노선과 대곡 소사선 등 대형 환승역으로 예정되어 있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역 인근은 봄 농사 준비가 한창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초기 일산 신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도 하다. 
이곳의 풍경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이기호 작가의 단편소설 <그러게나 말입니다>에서 등장하는 대곡역 이야기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집이 일산이면 대곡역 부근도 잘 아시겠어요?"
강변북로에서 자유로 입구로 진입하기 직전 대리기사가 그렇게 물었다.
"네, 뭐...거기야 그냥 전철로 지나가기만 했죠."
김상국 씨는 술이 좀 오른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대곡역 근처 풍경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곡역 주위는 다른 역들과 달리 온통 논과 밭뿐인 곳이었다.(중략)

"그러게나 말입니다. 집을 이고 다닌 줄도 모르고 집을 찾았으니...... 자, 이제 다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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