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보게, 저승갈 땐 뭘 가지고 가지? 기준 선생 묘(1521, 학예사와 떠나는 문화유산답사 - 고양시 편)

지 정 번 호 : 향토문화재 제17호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산27

기준(奇遵) 선생 묘는 원당 전철역에서 한양골프장 방향인 성사동 사근절 마을 뒤편에 서남향하여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 봉분은 정부인 파평 윤씨와 합장된 단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복재선생기준지묘 증정부인 윤씨 부좌(服齋先生奇遵之墓 贈貞夫人 尹氏 祔左)’라고 쓴 묘비는 1962년 4월에 세운 것입니다. 묘소에는 묘비 2기, 상석, 향로석, 망주석 2쌍, 문인석 2쌍, 동자석 1쌍, 석양 1쌍, 석사자 1쌍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중 망주석 1쌍과 문인석 1쌍은 원래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나머지는 전부 최근에 배치된 석물들입니다.
기준(1492~1521)은 문신으로 자는 경중(敬仲)이며, 호는 복재(服齋)와 덕양(德陽)이며 본관은 행주(幸州)입니다. 응교(應敎) 기찬(奇襸)의 아들이며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지요. 중종 9년(154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을 거쳐 홍문관(弘文館) 정자로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었고 사가독서를 하였습니다.
중종 11년(1516) 천문 예습관(天文隸習官)을 겸했고 검토관(檢討官), 수찬을 지낸 후 검상(檢祥), 장령(掌令), 시강관(侍講官)을 거쳐 1519년 응교(應敎)가 되었으나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를 위시하여 김식(金湜)·김정(金淨) 등과 함께 하옥되었습니다. 조광조 등의 과격한 논의에 아부하였다는 이유로 국문 받을 때의 공초는 다음과 같은데요. 한번 볼까요?

신은 나이 28세입니다. 소년 적부터 옛사람의 글을 읽어 집에서는 효도와 우애를 정성스레 하고, 조정에서는 충성과 의리를 힘껏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뜻이 같은 사람과 옛 도를 강구하여 나라를 요순(堯舜) 시대 정치와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로 기약하였습니다. 착한 자는 상대하고 착하지 않은 자는 미워하였습니다. 조광조와 어렸을 때부터 교유하였고, 김제·김구·김정을 근래에 상종하였는데 그들의 논의가 과격한 줄 모르고 상종했을 뿐이며 아부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튿날 본래의 죄명대로 아산(牙山)으로 귀양갔다가 얼마 뒤 함경도 온성으로 옮겼는데, 이듬해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다시 유배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전일 아산의 유배지에 있을 때 울적한 심정에 그 곳 산에 올라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이 뒤늦게 발각되었죠. 그리하여 당시의 그 고을 현감 배철중은 죄인을 마음대로 놓아두었다고 문책을 당하게 되자, 겁이 나서 도망쳐 갔다가 스스로 돌아왔다고 공초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곤장을 맞고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다가 자결하라는 명이 내렸는데 교살되었습니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온성의 충곡서원, 아산의 아산서원(牙山書院), 종성의 종산서원(鍾山書院), 고양의 문봉서원에서 각각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민(文愍)입니다. 고양 8현의 한 사람으로 저서로는 [덕양유고(德陽遺稿)], [무인기문(戊寅記聞)], [덕양일기(德陽日記)]가 있습니다. 그가 썼다는 글을 한편 읽어 볼까요? ‘부채(扇)’라는 글입니다.

염이용하희。 량이사하온。 순소우。 안궐분。
炎而用何喜 凉而舍何慍 順所遇 安厥分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더워서 사용되는 것을 무엇 때문에 기뻐하랴
서늘해서 버려지는 것을 무엇 때문에 성내랴
처해진 상황에 순응하고 
주어진 분수에 편안할 뿐

이 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혹시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은 기묘사화 이후 온성에 유배되었을 때 썼다고 하는데요. 교살되시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모시던 왕인 ‘중종’의 재위 시절에 충성을 다했으나 이제 ‘인조’의 시대가 왔으니 상황에 순응하자는 뜻일까요. 포기했다는 뜻일까요. 속뜻이야 있으셨겠지만 마지막에는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옳다고 마무리합니다. 옛 선비의 속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지요. 석용산 스님이 내셨던 책의 제목이 생각나네요.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