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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누리길은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서 내려

1번, 6번 출구

원당농협 방향으로 나오면

서삼능 누리길 안내판과 마주하게 된다

서삼능누리길 안내판을 살펴보고 나서

산책로를 따라 약 10여분 걸으면

술통이 건물앞에 있는

배다리 술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니

월요일을 피하여 방문하면

2층에 있는 1, 2전시실에 있는 각종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천년동안 농경사회를 형성해왔다

따라서 농경생활을 하면서

농경사회에서 힘든 일, 기쁜 일, 슬픈 일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막걸리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는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이젠 막걸리는

산행 시 정도에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술이 되었으니...

하지만 여기 주교동에 아직도 변하지 않는 곳이 있으니

1915년에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56번지(고양군 원당읍 주교리 56번지)에서

박승언님이 인근상회란 이름으로 배다리 술도가를 창업한 이래로

우리 전통술 막걸리의 가업을 5대째 잇고 있으며,

4대 박관원 옹과  5대 박상빈님이

2004년 7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냈나니

그것은 배다리 술 박물관의 개관이란다.

 

 

박관원옹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술의 맥과 역사를 보존하기 위하여

박물관을 열게 되었다고...

 

배다리 약술로 다양한 상을 수상한 상패가 보이고...

관장님의 이력도 보이고

일본신문에서도 취재가 되었다니...

농경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농부와 소와 막걸리일 것이다

 

논에 벼를 심으려면

소를 이용해

논갈이를 해야 하고

 

아버지가 논갈이 하는 동안

어머니는 국수를 막걸리와 함께 가지고 와

아버지가 마시는 막걸리를 보며

침을 꿀꺽했으니...

 

새참 때마다 등장하는 막걸리를

사발에 담아 벌컥 벌컥 마시면

가슴까지 시원함이 묻어났으니... 

어느 시대 사진인지는 모르나

 

중학교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는

자전거를 타고 술 도가집으로 가서

술 반말주세요 하면

술 도가집 주인이 넌 참 착하구나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하면서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사진은

일제시대

아니면 해방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전거 중에서도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이런 자전거에

술을 담아 배달했나 보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이었으니...

 

각종 애사, 경사에도 막걸리는 빠지지 않았으니

마을에 결혼이 있으면

국수와 막걸리,

반찬으로는 홍어(양념과 버무린 말랑말랑한 반찬)가

나왔으니

 

이뿐인가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3일동안 막걸리, 화토로

밤을 지세웠으니...

 

상이 나가기 전날에는

상여꾼들이 예행연습까지 하고...

 

또한 상여매는 사람들이 넘쳐났으니

왜냐하면

상여에 돈을 매단 것을 나눠 가질 수도 있고

운동화, 수건 등도 받았으니

운동화 귀한 시절에 신발을 마련하는 호사를 누렸으니

 

물론 이제는

상여매는 사람을 구할 수 없지요.

알록달록한 것을 보니 예쁘네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을 소중히 계승시키는

배다리 술박물관 관계자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배다리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한강 제방이 생기기 전에는

주교동까지 배가 드나 들었나 봅니다

제방으로 인하여 물길이 모두 막히었으니...

 

나무로 만든 큰 술통이 보이나요

일본 식민지 시대에 정종 공장에서 사용했던 술통이랍니다

 

 

잠시 착각에 빠져 봅니다

저 자리에서 술을 빛고 있는 나 자신을...

고양 한양 컨트리클럽에서 당시 서울시장이던 김현옥 서울시장과

골프를 친 다음에

목을 축이려 삼송동(당시 삼송리)의 실비옥에서 탁주(막걸리)를 마시다가

맛이 좋아 어디 막걸리랴고 물어본 후에

대통령이 청와대에서도 이 막걸리를 먹고 싶다는 일화가 있다네요

 

청와대에 막걸리를 납품할 때

능곡양조장의 한 곳을 대통령 전용 술을 만들기 위해

따로 방 하나를 비워놓고 만들었다는데

그대 능곡양조장의 밀실의 일부분을 재현했다고 하네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상반된 평가가 있지요

 

하나는 어려움에 살고 있던 우리나라를

지금처럼 먹는 걱정 하지 않게 되었다고...

 

다른 하나는 인권이 무시되고

민주주의를 말하지 못하는 시대였다고...

 

고양시에 있는 서삼능에 대하여 본다면

문화재 보호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군요

 

외국에서 돌아오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박대통령은

저곳이 어디인데

서울 옆에 저렇게 큰 곳을 방치했느냐고...

활용하라고...

 

먼저 골프장을 하나 지으라고

하여 애초 135만평이었던 서삼릉은

30만평을 뚝 떼어 한양골프장으로

또 뚝 떼어 종마목장으로

또 뚝 떼어 농협대학으로

또 뚝 떼어 군부대로

또 뚝 떼어 보이스카웃 수련원으로

또 뚝 떼어 농협가축 시험장으로

 

이제는 약 8만평만 남았다네요

그리고 서삼능 비공개구역을 둘러보려면

잠겨있는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

한달에 두번 2주, 4주 토요일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할 수 없게 되었으니...

 

능곡양조장에서 사용되었던

전화기란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시

남북관계를 열고자

소를 몰고 방북하였지요

 

그때 막걸리도 함께 가져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통일막걸리가 되었다는

유래가 있군요

어렸을 적 어머니의 생각이 납니다.

집 뒤 장독에서

밥을 놓고 치성을 드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술도 이렇게 정성으로 기도드린 후

빛는 것이겠지요

 

어렸을 적 집에서

술을 빛는 모습을 여러 번 본 기억이 납니다

 

막걸리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고두밥을 만들어야 겠지요

약간은 물기가 없는 쌀밥이 고두밥이지요

그리고 나서

쌀밥과 누룩을 섞지요

그리고 나서 독에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은 것을

담아두고

이불 등으로 독을 싼 다음

안 방 따뜻한 곳에다 놓아 두고 불을 때지요

좋은 술 빛내는 여섯가지 방법이란

 

1. 쌀을 고를 때는 벼가 팬 때부터 고르게 익은 것을 선택하며

2. 누룩은 여름에 잘 뜬 것을 골라야 하며

3. 쌀과 누룩은 잘 섞어서 술을 담글  때 깨끗하게 다루어야 하며

4. 좋은 샘물을 골라야 하며

5. 좋은 그릇을 사용해야 하며

6. 술이 작 익게 온도를 맞추어야 한단다.

 

 

어머니가 확독에다 대고

곡식을 잘게 부순다

 

양조장에서 불을 때는 모습이다

술통을 흔드는 모습인 것 같다.

독에 이불을 덮고

불을 때고

며칠이 지나면

끓어오른다

 

그때 독을 저어 주었던 생각이 난다

이젠 술이 만들어 지고

보자기에 술을 담아

짜내면 찌꺼기는 남고

막걸리만 나온다

박물관내 전시실엔

당시 술 도가에서 일하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생생하게 표현해놨다

뒤주란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영조에 의해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

 

그 부인이 혜경궁 홍씨이고

그 아들이 정조이지 않는가

 

얼마전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이산

김치와 반찬들과

막거리가 놓여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술의 유래란다

옛날 물이 난데 없이 끓는 것이 신기하여

물에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불이라 했단다

 

결국 부르기 쉽게 변천하여

술이 되었단다

중국에서는 항아리에 담아있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상형문자가 변천하여

오늘날의 술주자가 되었단다

막걸리는 다섯가지 좋은 점이 있으니

 

1.  허기를 면해 주고

2. 취기가 심하지 않게 하고

3. 추위를 덜어주고

4.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5. 평소에 하지 못하던 말을 술로 인하여 하게 만들고

술과 관련된 격언이다

 

80년 대학가에 있었던 말이다

나 역시 80년대에 막걸리를 많이 먹었지만

이런 말은 처음이다.

 

그것이 그리 무어 중요하겠는가

 

막걸리는 수난의 시절도 있었으니

쌀이 부족했던 시절

쌀로 술을 못 만들게 해

술감이 오면

술독을 화장실(변소)에 숨기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막걸리는 결국 정부의 탄압으로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길이 막히고

양조장에서만 만들게 되었으니

 

장점으로는 대량생산과

쌀이 아닌 것으로 술을 만들게 되었으나

 

단점으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수많은 술들의 명맥을 끊게 했으니...

 

막걸리를 빛는 사람과

막거리를 먹는 사람이 하나가 되었을 때는

막거리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있었으나

 

빛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다른 현재에는

빛는 사람은 부를 위한 수단으로

먹는 사람을 기호상품으로 서의 기능으로 변하게 되고

 

생각해 본다.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름다운 전통은

아끼고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마두2동 주민센터 길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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