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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직선생의 시 : 오로시

 

현대아파트앞 버스정류장을 지나

다리에서 개천을 바라보니

추운 물가에서

오리들의 헤엄치는 모습이

경쾌하다

한참 바라본 후

다리를 지나

우축으로 약 50m 정도 지나

횡단보도에서 도로를 지난다

주유소가 나오고

전봇대에는

선유랑마을과 고향향교의 안내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인도가 비좁거나

안내판을 설치 시

통행에 불편을 초래할 경우에는

시설물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보이는가

안내판 한쪽이 떨어져 나가 버렸다

자주 누리길을 다니는 사람이나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안내판이 없어도 되겠지만

고양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누리길을 찾을 경우

이러한 상태이면

누리길을 가는데

어려움을 줄 수 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안내판이 두개방향, 또는 세개 방향으로

나 있는 모습을 찾기 때문에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안내판을 찾을 수가 없다

산길로 접어든다

도예연구소가 있어

밖에서 보아도 도기를 볼 수가 있다

집들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다

눈이 소복이 쌓여 있어

겨울의 정취를 마음껏 즐긴다

주변의 나무들도 보고

앞으로 갈 방향도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호흡도 가다듬는다

뽀드득 뽀드득 눈길의 소리도 들으며

음달촌 약수란다

하지만 눈이 쌓여 있어

약수터를 발견할 수 없다

능선이다 보니

이곳에서 잠시 쉬는 곳인가 보다

벽제관지에서 이곳을 거쳐

서울의 모화관(지금의 독립문)으로

가는가 보다

산책로 끝이란다

그렇다면 산책로의 시작이 있구나

알아보니

안장고개에서

선유량방향으로 가다 보면

산책로 시작인 곳이 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이 산길을 걸어봐야 겠다

안내판이 보이고

고양향교가 1.75km

선유량마을이 0.52km란다

그렇다면

선유랑 마을이 코앞이네

마을회관 가는 방향도 표시되어 있고

성황당고개와 돌무더지에 대한 소개가 있다

알아볼까

이 성황당 고개는

고양동마을과 선유동마을의 경계로서

선유동 누리길 구간중 가장 높단다

본래는 중국과 한양을 오가던

연행로를 오가던 사신들이 지나다니는

옛길이란다

이 길을 다니던 사람들은

소원성취,

마을평안,

국태민안 등의 목적으로

돌 무더지를 쌓았고

이곳에 민간신앙의 일종인

성황당이 자리잡았단다

지금도 돌무더지가 있는데

쌓여진 돌을 이용하여

외부세력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기도 했단다

돌 무더지가 보이는가

돌 무더지 주위에 나무들을 바라본다

하늘과 어우러진 나무들

보기좋지 않은가

이젠 하산이다

마을이 나타날 것 같다

집이 보이고

집 위에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어

아름답다

집을 지나 다시 걷는다

누리길 표시가 나무에 매여 있다

누리길이 나무에 둘러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안내역할을 한다

귀가 쫑긋 솟은 개가

담을 따라 계속 따라온다

개의 짖는 모습이 밉지가 않다

개를 보니

예쁘지 않은가

담장이 없었다면 무서웠을 텐데

담장아 고맙다

묘역이 보이고

묘역 주위에

나무가 우람하게 솟아 있다

선유동 전주이씨 묘역이란다

전주이씨라면

조선시대 왕실이지 않던가

선유동이 명당인가 보다

오래전부터 경치가 뛰어나고

명당자리가 많아

명문가 및 왕실과 관련된 유적이 많단다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원 남양홍씨의 묘역을 비롯하여

세종의 손자인 귀성군 이준

중종과 숙원 남양 홍씨의 아들인 해안군의 묘소도 있단다

묘소에는 비석의 전통조각과 문인석의 표정,

비문의 글씨가 뛰어나

조선 전기 왕족 및 사대부의 묘역을 연구하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단다

한번 살펴 볼까

보이지 않는가

비석과 묘와 석등이...

석등과 문인석이 보인다

비석의 전통조각은

세월이 오래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묘역을 두른

나무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석등과 문인석을 조금 크게 찍어봤다

문인석의 표정을 보라

무엇을 들고

공손이 서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방향이 다른 쪽의 문인석도

찍어봤다

석등을 보라

안정감이 있지 않은가

묘지를 빙 둘러 서 있는

쭉쭉 뻗은 나무들의 모습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동양화 같지 않은가

언제나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위용을 보라

선비의 모습같지 않은가

묘역을 내려와 들판을 걷는다

새가 어서오라고 반긴다

새도 외롭지 않겠는가

주위에는 모두 눈으로 덮이고

잠자리, 곤충들도 보이지 않으니

배는 고프고

눈으로라도 배를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아럴 때 손님이 찾아온다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새가 낙엽이 떨어져

쓸쓸이 있는 나무에게

친구가 되어 있다

겨울이라 쓸쓸할 것 같지만

새들이 반기니

심심하지가 않다

새야

이 겨울을 잘 견디렴

어려운 일을 견디고

봄을 맞는다면

기쁨이 클거야

벼들을 수확하고

남은 벼포기들도

눈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젠 시멘트 도로다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삼거리가 나오고

갈림길이 나오면

나타나는 것이 있으니

안내판이란다

안장고개 1.25km

고양 향교 2.3km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선유랑 체험마을이란다

엘크 사슴, 흑염소, 쌈채, 비단잉어, 황토논물 체험장과

압화, 선학공예, 양봉, 풍난체험장이 있단다

해를 보니

노을이 진다

아쉽지만

선유랑 체험마을의 체험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도로가 쭉 이어져 있다

안내판이 보인다

선유동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직선생이란다

이곳에는

조선조 전기 영의정을 역임한 문경공

이직묘소,

시비,

신도비가 있다

유명한 오로시를 남기기도 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보이는 문인석은

조선전기 투박하고

단순한 양식이란다

묘역을 올라가는 곳이다

계단을 크게 찍어봤다

오로시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소냐

겉 희고 속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영의정 문경공 형제 이선생 신도비란다

항상 묘역을 보면

궁금한 것이 있다

왜 비석을 받치는 것이 거북이일까 라고...

정재수교수의 동양신화 이야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단다

여와는 중국신화에서 등장하는 대모신이다!

오빠인 복희와 함께 그려진 경우도 많지만,

원래 여와는 복희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이끈 신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복희와 함께 나열된 것은,

훗날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화하면서,

또는 중국대륙에서 정복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신화가 서로 만나 합쳐졌다고 봐야 한단다

어찌되었건 이야기는 천지창조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난데없는 물난리와 화산 때문에 사람들이 울부짓고

성난 짐승들이 길길이 날뛰자,

보다 못한 여와가 나섰다.

자비로운 여와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슬퍼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오색 빛깔이 나는 넓은 돌을 잘 다듬어서

하늘의 뚫린 구멍을 기웠다.

맞다!

그냥 메꾼 것이 아니라, 바느질로 기웠다.

문제는 땅의 꺼진 부분이었다.

여와는 고민 끝에 거대한 자라를 잡아 네 발을 잘라,

그것을 사방 끝에 세워 땅을 떠받치도록 했다.

그제서야 사람이 비로소 다시 세상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비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북이 비석을 업고 있는 형상은

바로 이런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거북을 잘 살펴보면

머리 부분은 대다수 거북이 아니라

용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

용은 양을 뜻하고,

거북의 몸은 음을 뜻한다.

동양사상에서 양과 음은 서로 순환하면서

영원무궁토록 지속된다.

문인석이 보인다

문인석은 오래된 것과

이처럼 최근의 것이 있다

거북이가 비석을 받치는 또 하나의 설은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위에 두 마리 용으로 장식된

이수(螭)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용의 모습 외에

해태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사실적인 거북 모양에서 점차 변형되어

장중한 것,

패기에 넘치는 것,

우아한 것 등 형태를 달리한 것이 많습니다

위와 같이 무덤 받침이나 어떤 장식의 받침으로

거북형상을 쓰는 것은

단순히 장식적인 의미만 있는것이 아니라

'가야국'과 관계가 있습니다.

가야국은 삼국시대 때

한반도 남부지역에 있었으며

한때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떨친 국가 입니다.

바로 이 가야를 상징하는 것이 '거북이' 입니다

다시 말해 가야국의 상징인 거북이의 등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놓음으로서

그 기운을 꺽는 일종의 비방이라고 합니다.

묘역이다

비석을 찍어 봤다

노을이 비석을 비춘다

글씨를 크게 찍어봤다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아랫부분이다

도로를 따라 걷는다

차량도 많이 다니지 않고

걷기에 무난하다

하지만

다음에는

산책로로 걸어야 겠다

아무리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다 해도

도로는 도로이지 않는가

절개지에 도로를 내다보니

무너지지 않도록

돌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하였다

촘촘히 박혀 있는 돌을 본다

묘지가 나타난다

묘지 주위에 나무가 우람하다

돈이 많은 후손인가 보다

현재는

돈이 많은 분들이

조상들의 묘를 잘 꾸미지 않는가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산책로 입구다

그렇다면

선유랑마을을 거치지 않고

산으로 연결되었구나

호젓하게 걷고 싶은 사람이면

산책로를 이용하면 좋겠다

도로에 차가 없으니

도로로 걷는다

길이 쭉 뻗어있다

선유랑 체험마을에 대한 설명판이 있다

삼거리가 나오나

쭉 직진으로 간다

지나온 선유랑마을과

이곳과의 거리는 400m란다

안장고개 0.35km

선유랑마을 0.91km란다

선유랑마을이 잘 설명되어 있다

드디어 안장고개가 보인다

나무가 쭉 이어져 있고

나무들이 쭉 이어져 있으니

아름답지 않은가

음식점이 전통 한옥으로 지어져 있고

집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으니

보기에 좋다

드디어 다왔다

종합안내판이 보인다

선유랑 마을이 1.26km란다

메조산이 필리핀 참전비 뒤에 있다

선유랑 산과 연계하여

올라야 겠다

현재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현재 위치는 안장고개다

고양동 누리길 종점이란다

이곳까지 걷느라 수고 많았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를 칭찬한다

전주이씨 비석

경주이씨 비석이 보인다

선유랑마을 녹색 농촌 체험마을이란다

선유랑 체험마을에 대한 설명이다

마을에는 두루미가 많았다 하여

선유동이라고 했단다

서울에 근접했음에도

산림이 우거져 온갖 동식물이 서식하고

골짜기마다 약수가 나오며

산나물과 도토리가 지천이란다

또한 대부분의 농지가 천수답이라

쌀맛이 좋단다

글자를 크게 해봤다

자세히 읽어보기 바란다

마을의 각종 체험장소가

잘 표기되어 있다

누리길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하여

게재하였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식사동 주민센터 길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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