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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는 경기도 북부지역은 오랜 세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입니다. 1953년 휴전 이후 40 여 년 동안, 이곳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가는 길목마다 검문소와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었지요.
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1990년대로 넘어와서야 우리는 경기북부지역에 산재해 있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눈을 돌릴 여유를 갖습니다. 접경지역에 내려졌던 규제도 차츰 완화되거나 없어지고 있습니다.
고려의 수도 개성, 조선의 수도 한양 사이에 있던 경기도 북부지역에는 특히 당대의 지식인, 즉 선비들이 남긴 문화재가 많습니다. 경기도에서는 그동안 잊혀졌던 소중한 유무형 유산을 발굴하여 관광자원화 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DMZ 평화누리길"은 그러한 노력의 한 부분입니다.
2010년 5월 8일, 공식으로 개통된 "DMZ 평화누리길"은 서부전선 김포에서 중부전선 연천까지 182 킬로미터를 잇는 답사길입니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DMZ)라는 표현이 들어갔지만 실제 "비무장지대"에는 남이든 북이든 군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 '휴전선'이라고 부르는 그 "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정전협정을 맺고 나서 남과 북을 가르는 선으로 설정된 것이 군사분계선(휴전선)입니다. 군사분계선에는 일정 간격으로 표시용 말뚝만 박혀 있지 철조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북쪽 2킬로미터 구간이 북방한계선, 남쪽 2킬로미터 구간이 남방한계선입니다. 비무장지대라 함은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지역을 말하며 길이로는 248킬로미터(155마일)입니다. 남한의 경우, 남방한계선과 일반지역 사이에 별도의 통제지역을 설정해 놓았는데, 그것이 흔히 '민통선'이라 부르는 "민간인출입통제선"입니다. 짧게는 5킬로미터, 길게는 2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남방한계선과 민간인출입통제선에는 모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DMZ 평화누리길은 "민간인출입통제선"에서 비교적 가까이에 위치한 제방길, 농로, 마을길, 숲길, 때로는 대로변을 연결하여 조성했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민통선 안쪽을 걸어 볼 수 있는 구간이 있기는 합니다.^^;

경기도 지역의 DMZ 평화누리길은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을 연결하는데요. 각 누리길은 2 ~ 4 구간으로 다시 나뉩니다. 짧은 구간은 8킬로미터, 긴 구간은 23킬로미터 정도로, 편도 2시간에서 7시간 정도까지 편차는 큽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길은 고양시 첫째길. 행주산성에서 고양호수공원 선인장전시관까지 10 킬로미터를 걸어보는 이 길은 전 구간 평지입니다.^^

행주산성에서 출발하여 행주나루가 있던 신행주대교를 지나면 장항습지로 이어지는 철책길이 나옵니다.  100미터 정도의 짧은 철책길이 끝나면 제1자유로, 제2자유로를 건너 행주벌판을 가로지릅니다. 삼성당마을에서 잠시 큰길로 나와서 섬말다리까지 벚나무가로수길을 걷습니다. 섬말다리에서 호수공원까지는 다시 농로를 따라 걷고 또 걷습니다. 호수공원으로 진입한 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따라 선인장전시관에 다다르면 첫째길은 끝이 납니다. 미리 챙겨간 평화누리길 지도와 안내판을 살펴 본 후 드디어 출발.~ 

고양 첫째길 시점은 행주산성 입구 주차장입니다. 이 출발점만 약간 가파른 내리막길이고 나머지는 높낮이가 거의 없답니다.~
예전에는 인도가 없었는데, 최근 만들어 놨네요. 고양시정연수원 입구까지는 이렇게 인도를 따라 걷습니다.
시정연수원을 지나면 신행주대교 직전까지 수많은 음식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름하여 "행주산성 음식문화거리"랍니다.
좌우로 무슨 음식점인지 살펴 보면서 걷다보면 행주서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큰길에서는 음식점에 가려서 잘 안보이지만,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건물이 보입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1호인 행주서원은 안내판에 "행주서원지(址)"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址)"란 "터", 즉 흔적만 남은 곳이라는 뜻인데, 웬걸, 건물이 멀쩡하게 보이는데 "터"라고 하니 어리둥절 했는데요. 
출입문(외삼문)으로 보이는 이 정면의 건물은 외삼문이 아니라 실은 행랑채였습니다.^^; 
행주서원은 권율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기공사"에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 중 소실된 것을 차츰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전에는 서원 안에 행주대첩비도 있었는데, 비는 현재 행주산성 공원 안 충장사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서원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건물 오른쪽에 잘 만들어 놓은 안내판으로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행주서원지를 잠시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차츰 길 옆으로 한강과 신행주대교 일부가 보이는데요.
어느 음식점 주차장 입구에 자리잡은 작은 표지석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 근처 어딘가에 행주나루가 있었을 겁니다.^^ 그 옛날 행주나루 부근 한강은 폭이 지금보다 많이 좁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 건너편에서 뱃사공을 부르는 소리도 잘 들렸다는데요. 행주나루는 남도에서 서해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배는 물론, 중국 등 외국에서 오는 배도 있을만큼 번성한 나루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북한의 간첩들이 한강을 따라 수도권으로의 진입을 시도하자 강변은 철책으로 막히고, 1978년 행주대교가 건설되면서 나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금은 작은 표지석과 안내판만이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려 줍니다.
나루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행주대교 북단이 보입니다.
다리 아래에는 작년 이맘 때 까지만 해도 여러겹의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한강변 철조망 제거가 시작되면서 모두 사라졌습니다. 

다리를 지나면 철조망길이 보입니다. 이곳도 철조망을 걷어 내는 작업이 시작되었군요.~ 

길을 건너면 한강변 철책길 입구가 보입니다. 이곳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낮 시간에만 출입이 가능했었는데, 완전 개방되었군요. 이 구간 철책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한 100 미터 정도 걷다보면 제방길은 막히고, 오른쪽 샛길로 들어갑니다만, 제방길을 막던 철문이 사라졌습니다.
평화누리길을 처음 만들 때는 여기서부터 경계지역이라, 제방길을 따라 장항습지로 들어가는 것은 특별한 행사 때만 가능했었답니다. 허나 지금은 김포대교 북단 자유로 IC 부근까지 약 1.5킬로미터 정도 임시 개방되고 있습니다.
'이게 웬떡이냐' 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단의 땅이었던 제방길 깊숙이 들어가 봅니다.

철조망 너머로 비닐하우스와 밭이 있습니다.
3월로 들어섰지만 아직 추운지라, 큰기러기 같은 겨울철새들은 그 밭에서 고향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길은 작년 2012년 가을에 평화누리길에 정식으로 포함될 예정이었습니다만, 아직은 준비중이네요.^^;
가능한 곳 까지 걸어가 본 후 

아까 갈림길로 돌아갑니다. 거꾸로 왔기에, 아래 사진에서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좁은 길을 따라 제1자유로 아래 굴다리를 지난 후, 왼쪽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오른쪽 샛길이 몇 번 나오는데, 그 중 전봇대에 이런 표시가 있는 샛길로 들어서면 됩니다. 이곳에서도 경로 변화가 있었는데요. 최초로 길을 냈을 때는 이 샛길을 따라 제2자유로를 건너 행주벌판의 비닐하우스 단지 농로를 종횡무진(?)해서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최근에 비닐하우스 길을 생략하고 제1자유로 아래 농로를 따라 계속 직진, 개천이 나오면 오른쪽 제방길로 방향을 틀어서 삼성당마을로 빠지게 바뀌었습니다.
 
새로 바뀐 구간에 딱히 표지도 없고,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이전 경로를 따라 갑니다. 

제2자유로 굴다리를 지나면 비닐하우스 단지 사잇길을 따라 기역(ㄱ) 니은(ㄴ) 자 모양으로 계속 길이 굽습니다.^^
바둑판처럼 길이 나 있으나, 재미(?)를 주고자 경로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이 구간에는 의외로 논농사 짓는 곳이 드뭅니다.
논 주변을 지나는데 무언가 조그마한 녀석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 게 보였습니다.
뭔가 했더니 참새떼. 이렇게 많은 참새 보신 적 있나요? +_+
 
간만에 신기한 장면을 목격한 후 앞으로 나아갑니다.
간혹 비닐하우스 문을 열어 놓은 곳이 있는데, 무얼 심어 놓았나 슬쩍 보면서 지나갑니다.~
 
이정표를 따라 좌로 우로 걷다보니,
 
어느덧 시골길 마지막, 삼성당마을에 다다랐습니다. 일산 신시가지에서 능곡쪽으로 가다보면 거치는 "삼성당".
마을 이름이 독특해서 그 유래를 찾아 본 적이 있는데요.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고양 곳곳에는 집성촌이 많았답니다. 이 삼성당마을은 송씨, 임씨, 한씨, 세 성씨가 정착하여 삼성마을로 불렸습니다. 이후 도당굿(마을굿)이 이곳에서 열리면서 당집 "당(堂)"자가 더해져서 "삼성당"마을이 되었는데요.  지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삼성마을에는 삼성(당)산이란 야산이 있는데, 봉우리가 세 개 랍니다. 그 봉우리는 신라시대에 삼성산 위로 떨어진 별 세 개라는군요.^^ 마을 한 쪽, 평화누리길이 지나는 곳에 안내판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성당마을을 지나면 큰 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부터 섬말다리까지 약 1.5킬로미터 구간은 직선 대로변을 걷습니다.
4차선의 큰 길이라 보행로가 있기는 하지만, 차들이 옆으로 쌩쌩 달리는지라 부담스러운 길이네요. ㅎㅎ ㅠㅠ
 
이 구간은 가로수가 벚나무입니다. 봄날 벚꽃 필 때 걸으면 더욱 운치있습니다. 길 왼쪽은 섬말(섬마을)이라는 곳인데요.
지금은 한강변 제방을 워낙 튼튼하게 쌓아 놓아 큰 비에도 강물이 범람할 일이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큰물이 지면 이곳은 말 그대로 물바다. 물 속에 뜬 섬 같다고 하여 섬[島]말이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역시나 유래를 알려주는 별다른 안내판은 없고, 제가 나중에 주워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로를 따라 한참 걷다보면 섬말다리가 나옵니다. 예전엔 작은 다리였겠지만, 지금은 제법 큰 다리인데요.
다리를 건너자 마자 왼쪽 아래로 농로로 평화누리길은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 호수공원까지도 거의 일직선 농로입니다. 걷는 사람보다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이 보이고 그렇습니다.
 
4킬로미터 넘는 길을 한 시간 정도 걷다보면 드디어 호수공원의 명물, 메타세쿼이아 산책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진입로를 따라 공원으로 들어가서 상큼하게 걷다보면,
 
어느덧 고양평화누리길 첫째길 종점인 선인장전시관에 도착합니다. 

오랜 걷기 끝의 달콤한 휴식은 아름다운 선인장과 함께합니다. ^^ 

이렇게 DMZ 평화누리길 고양시 첫째길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고양평화누리길 첫번째 구간은, 지금 모습으로 보면 "DMZ 평화누리길"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백 미터 정도의 짧은 철조망길 이외에는 대부분 비닐하우스가 많이 설치된 농로를 걷습니다. 나중에 경로가 한강변 쪽으로 완전히 변경된다면, 지금과는 달라 지겠지요. 정비가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구요. 군데군데 마을의 유래나 전설 같은 읽을 거리를 보충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합니다.

제주 올레의 영향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길"이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만들어 질 것입니다. 등 떠밀려서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길 하나를 내기 위해 관계자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을 겁니다. 어렵게 만든 길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평화누리길도 걷기행사 때가 아니면, 주말이어도 걷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자전거 타는 분들입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 아니 해외까지 가는데, 가까이에 "좋은 길"이 있다면, 굳이 먼데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평화누리길이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평화누리길 찾아가는 방법>




글. 사진 한정호 (경기소셜락커 초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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